` 개인적인 중보기도 부탁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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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중보기도 부탁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윤장로 발행일 : 2025-04-17

신앙의 세월이 쌓이고, 경험이 덧대지면 더 단단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진다. 교회 안에서의 말, 태도, 기도, 손의 움직임 하나까지도 누군가에겐 위로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겐 시험거리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 예배를 마치고 복도에서 조용히 다가온 한 권사님이 나에게 말하셨다. “기도 좀 부탁드려요. 요즘 아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서…”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아… 이건 그저 “네, 기도하겠습니다” 하고 말할 문제가 아닌데.’ 마음속에서 이상한 전선이 엉켜버리는 느낌이었다. 왜일까. 나 같은 평범한 직분자가 누군가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기엔 너무 작은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중보기도 부탁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중보기도, 쉽게 ‘예’ 하지 말자?

처음엔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도 부탁이라니, 말은 쉽지… 그 책임은 누가 지지?’ 어떤 기도는 가볍게 “주여, 그 가정을 붙들어 주소서” 하고 지나갈 수 있지만, 어떤 기도는 심장을 같이 쥐어짜야 하는 기도가 있다. 그 아픔을 함께 품지 않으면 안 되는 기도.

그런 중보기도는, 단순히 부탁받았다고 해도 무조건 ‘예’ 하고 받아들이는 게 반드시 바람직하진 않다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보기도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냥 입으로만 기도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무게를 내 마음에 얹어야 한다. 거기엔 정신적인 에너지, 시간, 진심이 필요하다.


기도해주겠다고 했는데… 까먹었다? 그건 실수 아니다, 죄다.

가끔 이런 일도 있다. 누가 나에게 “기도해주세요” 하면 “네, 기도할게요” 대답은 했지만… 돌아서서 잊어버렸다. 몇 주 후 다시 마주쳤을 때, “기도해주셨죠?” 하고 물으면, 나의 머리는 빠르게 거짓말과 핑계를 조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실수가 아니다. 죄다. 하나님 앞에서 진심 없이 약속한 기도는, 영적인 나태함일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여긴 거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희망처럼 내민 요청이었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까?

솔직한 말로, 나는 요즘 이렇게 대답하려고 한다.

“권사님, 그 일은 하나님 앞에 참 중요한 기도제목 같습니다. 제가 기도하면서 마음에 부담이 계속된다면, 그때 더 깊이 중보하겠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위해 기도하면 좋을지도 적어주실 수 있을까요?”

이 말 속에는 몇 가지 중요한 태도가 있다.

  1. 기도를 쉽게 약속하지 않는다.
  2.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다.
  3. 기도의 구체성을 요청한다.
  4.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한다.

기도는 시작이 아니라, 관계다

중보기도는 단순히 시작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기도를 통해 내가 그 사람의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중보기도는 매우 위험한 사랑의 행위다. 잘못하면 감정적으로 소모되고, 영적으로 지치며, 관계가 복잡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기도 전에 내 마음을 점검해야 한다. 지금 이 기도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사람의 고통을 안고 주님께 나아갈 믿음이 있는가?


너무 감정적으로 빠지는 것도 경계하자

특히 장로라면, 감정과 영성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분들은 기도 부탁을 받는 순간부터 본인의 감정에 깊이 이입돼 버린다. 울고, 떨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물론 그런 기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 결국 그 기도는 나를 태우고, 남을 돕기보다 나를 상하게 만들 수 있다.

중보는 사랑의 행위지만, 동시에 지혜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특히 교회 내에서의 인간관계는 신앙과 감정이 얽혀 있기 때문에 기도 하나로 관계가 바뀌는 일도 많다. 조심해야 한다.


‘기도 중입니다’라는 말, 함부로 쓰지 말자

카톡으로 흔히 “기도 중입니다”라고 보내곤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때로는 가장 공허한 말이 될 수 있다. 정말 그 사람을 위해 눈 감고 기도했는가? 손을 모았는가? 아니면 그냥 위로의 수단으로 쓴 건가?

가끔은 이렇게 말해보자.
“아직 기도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에 하나님 앞에서 꼭 그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고 구체적인 말이 훨씬 더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진짜 마음이 느껴지니까.


마지막으로, 기도는 기도로 끝나지 않는다

기도해준다는 건 끝이 아니다. 그 사람의 상황이 나아지든 나빠지든, 나는 여전히 그 옆에 서 있어야 한다.

기도는 나와 그 사람 사이에 놓인 하나님의 연결선일 뿐이다.

중보기도를 부탁받았다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그 선 위에 세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기도는 말로만 끝나선 안 된다.

  • 한 번쯤 안부를 묻고,
  • 결과를 들어주고,
  • 작은 격려를 보내고,
  • 무엇보다 하나님께 그 사람의 이름을 또 올려야 한다.

마무리하며 – 기도는 공공재가 아니다

기도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영적 도구지만,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공공재’가 아니다.

누군가가 내게 기도를 부탁했다는 건, 그만큼 내 신앙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부탁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반응은 진실, 겸손, 책임, 그리고 사랑이다.

오늘 당신에게 누가 “기도 좀 해주세요”라고 말한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 조용히 물어보라.
“주님, 제가 이 기도를 받아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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