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산불 피해 현장 - “십자가가 타도, 사랑은 안 타니까요.”
2025년 영남 산불 피해를 바라보는 장로의 마음 일기
한번 상상해보자. 주일 오전, 9시 50분쯤. 여느 때처럼 성경책을 끼고 익숙한 교회 계단을 오르려는데—
교회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고? 그게 지금, 우리나라 남쪽 동네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2025년 3월부터 4월까지 경북 예천, 봉화, 밀양, 울진, 의령, 합천…
산불로 15곳 넘는 지역 교회들이 전소되거나, 구조물이 파손됐다.
기와가 툭툭 떨어져 나가고 강대상은 숯이 되었고 성구들은 한 줌의 재로…
나 같은 장로는 솔직히 화려한 SNS보다 단체 카톡방 뉴스 링크로 이런 소식을 접한다.
그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서늘하다. 정확히 말하면, 멍하고 서늘하다.
내 믿음이 검은 연기 속에 휘청이는 기분이다.
“여기, 그래도 예배 드립니다.”
불탄 교회 앞에, 나무 간이의자 다섯 개. 그 위에 앉은 노장로 한 분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신다.
이 장면은 실제로 울진군 북면에 위치한 ‘작은 개척교회’ 앞에서 포착된 사진이다.
십자가는 녹아내렸지만, 그 자리에 성도는 있었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찾은 선한 손길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이 물음 하나가 나를 움직였다.
며칠을 새벽기도 끝나고 검색만 하다가 ‘선한 손길’이란 이름으로 움직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단체도, 개인도, 교회도 다 제각각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 중’이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사례를 정리해본다.
이건 내 블로그 기록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겐 작은 영감이 되길 바란다.
유형1. ‘이불 한 장, 말씀 한 구절’
대구의 한 70대 권사님은
자신이 몇 년째 모아둔 이불 27채와
직접 써내려간 말씀 카드를
피해 교회로 보내셨다.
그 카드엔 이런 글이 있었다.
“타버린 시간 속에서도, 주님은 여전히 일하십니다.
기도는 아직 살아있고, 찬송은 불에 안 탑니다.”
이불을 받은 한 성도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고 한다.
“이게 그냥 이불이 아니라, 믿음의 담요 같아요.”
유형2. ‘트럭 기사 장로의 3일 간의 노선 변경’
김해에서 운전하시는 50대 장로 한 분. 본래는 수도권으로 화물 운송을 다니셨는데
산불 뉴스를 본 뒤, 자비로 기름 넣고 피해지역으로 3일간의 물품 지원 운송을 하셨다.
교회에서 모은 생수 80박스, 간식, 응급용 구급약품 등등…
“주님도 나귀 타셨잖아요. 난 트럭 타고 간 겁니다.”
이 말이 멋져서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유형3. ‘예배의자 30개 직접 만든 청년목수들’
부산에 있는 한 청년 목공 동아리는
불에 탄 교회를 위해 새 예배용 의자 30개를 만들어 기증했다.
무광 바니시로 마감한 그 의자 뒷면에는 다 똑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불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믿음에게”
그들의 교회는 아니었다.
가본 적도 없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말했다.
“교회는 국경도, 지리도, 나이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형제 자매입니다.”
그리고, 나도 조금은 움직여 봤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 물음 앞에 작아지던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일어섰다.
내 블로그에 피해 교회 목록을 정리해 올렸고 중보기도 순서를 자녀들과 나눠
매일 다른 지역 교회를 위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장롱 깊숙이 넣어뒀던 새 수건 세트를 꺼냈고
교회 권사님들과 함께 ‘응원 편지 + 생필품 박스’ 12개를 포장했다.
하나는 우체국으로, 하나는 교단 총회 지원처로 보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런 말을 되뇌인다
🔹“건물은 무너졌지만, 믿음은 남는다.”
🔹“십자가가 타도, 사랑은 안 탄다.”
🔹“기도는 연기로 오르되, 절망은 재로 가라앉는다.”
조금 시적이지만,
신앙의 언어는 시보다 깊고, 현실보다 뜨겁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장로로서의 마지막 고백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제가 알 수는 없지만,
이 일로 인해 더 많은 사랑과 기도가 오가는 것을 보면
주님이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심을 느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 그것조차 귀히 쓰시는 주님께 이 마음을 바칩니다.
우리가 세우는 교회는 벽돌이 아니라
기도의 울림, 연대의 손길, 그리고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입니다.
그 불씨, 오늘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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